맨위로가기

마요르카 왕국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마요르카 왕국은 발레아레스 제도를 중심으로 1229년 아라곤의 자메스 1세에 의해 건국되었다. 지중해의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여 프랑스 왕국, 아라곤 왕국 등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 속에서 존속했으며, 마요르카, 메노르카, 이비자, 포르멘테라 등 발레아레스 제도와 루시용, 세르다냐 등의 영토를 포함했다. 자메스 2세 시기 아라곤과의 갈등, 제노바와의 전쟁,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겪었으며, 1349년 자우메 3세가 류크마요르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아라곤 왕국에 합병되어 멸망했다. 이후 명목상의 왕위 계승이 이어지다 1406년 이사벨의 사망으로 마요르카 왕가는 단절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마요르카 왕국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일반 명칭마요르카 왕국
공용어카탈루냐어
수도팔마, 페르피냥
종교로마 가톨릭교회(공식)
마요르카 왕국 국기
국기
14세기 이후 마요르카 군주의 왕실 문장
문장
13세기와 14세기의 마요르카 왕국 지도
13세기와 14세기의 마요르카 왕국
정치
정부 형태아라곤 주도의 왕립 입헌 군주제
역사
성립1229년
해체1715년
주요 사건누에바 플란타 칙령
이전무와히드 왕조
이후스페인
멸망1349년
통치자
국왕자우메 1세 (1229년 ~ 1276년)
자우메 2세 (1276년 ~ 1311년)
면적 및 인구
면적 (1239년)4992 km²
인구 (1239년 추정)50,000명
현재
현재 국가스페인
프랑스

2. 지리

왕국은 발레아레스 제도에 속해 있었으며, 마요르카, 메노르카[4], 이비자, 포르멘테라를 포함했다. 국왕은 또한 루시용과 세르다냐의 본토 백작령과 야고보 1세가 유지한 오시타니아의 영토인 몽펠리에 영주, 오베르뉴의 칼라트 자작령, 몽펠리에와 인접한 오멜라스의 남작령의 영주였다.[2]

3. 역사

1269년 자메스 1세의 마요르카 왕국 국기


아라곤의 자메스 1세는 카페 왕조프랑스 왕국아라곤 왕국 사이의 분쟁 지역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인 마요르카 왕국을 세웠다. 그는 왕국의 취약성을 인식하고 세르다냐를 정복하려 했으며, 아들 자메스와 사보이 백국 베아트리체의 결혼을 추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1]

마요르카의 자메스 2세는 아라곤의 페드로 3세에게 조공을 거부했으나, 1279년 마요르카는 아라곤의 종속국임을 인정하고 페르피냥 조약을 통해 양국 간 권력 불균형이 생겼다. 이후 마요르카 왕국은 의회가 부재하여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다.[1]

아라곤 십자군 동안 자메스 2세는 교황 마르티노 4세 및 프랑스와 동맹하여 페드로 3세에 대항했으나, 아라곤의 알폰소 3세가 1286년 마요르카 왕국을 정복했다. 1295년 아냐니 조약으로 아라곤의 자메스 2세는 발레아레스 제도를 반환했다.[1]

1324년 마요르카의 산초 사후 마요르카의 자메스 3세가 즉위하고, 마요르카의 필리프가 섭정을 맡았다. 1325년 필리프는 사르데냐 침공으로 인한 부채를 갚고 아라곤의 왕위 계승권 주장을 포기시켰으나, 왕국은 재정 위기에 빠졌다.[1]

자메스 3세는 제노바 공화국과의 전쟁(1329–1336)으로 경제 시장을 잃고, 유대인에게 세금을 부과했으나 역부족이었다. 1341년 아라곤의 페드로 4세가 관계를 단절하고, 1343년 발레아레스 제도, 1344년 루시용세르다냐를 침공했다. 1349년 자메스 3세는 루크마조르 전투에서 패배, 전사하며 마요르카 왕국은 아라곤에 합병되었다.[1]

마요르카 왕국의 멸망은 백년 전쟁에 영향을 주었다. 자우메 3세의 아들 자우메 4세는 바르셀로나 유폐 후 탈출, 나폴리 여왕 조반나 1세와 결혼했다. 잉글랜드 흑태자 에드워드의 카스티야 왕국 내전 지원에 동행했으나 병에 걸려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난 후 1375년 사망했다. 자우메 4세 사후 이사벨이 왕위를 계승했으나, 1406년 사망하며 마요르카 왕가는 단절되었다.[1]

3. 1. 건국

1229년, 아라곤 왕 하이메 1세의 마요르카 섬 정복


마요르카 왕국은 "정복왕"으로 알려진 아라곤 국왕 하이메 1세가 세운 나라이다. 그는 이슬람 지배 하에 있던 지역 점령에 매진하여, 1229년부터 발레아레스 제도 마요르카 섬에 대한 침공을 시작했다. 1232년에는 메노르카 섬, 1235년에는 이비사 섬을 제압했다. 장남 알폰소의 사망 후, 그는 후처 요란과의 사이에서 얻은 두 번째 아들 하이메에게 줄 나라로서 1262년, 마요르카 영토를 하이메에게 상속할 의지를 기록했다. 1276년 하이메 1세의 사망과 함께 아라곤 왕국의 왕위는 적자 페드로(페드로 3세 (대왕))에게 계승되었지만, 유언에 따라 마요르카 왕국은 하이메에게 상속되었고, 하이메는 마요르카 왕 자우메 2세(Jaime는 스페인어로 하이메, 카탈루냐어로는 Jaume 자우메)로 즉위했다. 또한 유언에서는 동시에 마요르카 왕국은 아라곤 왕국의 종속국임도 명시되어 있었다.

마요르카 왕국의 주요부는 발레아레스 제도의 마요르카 섬, 메노르카 섬, 이비사 섬, 포르멘테라 섬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도서부 외에도, 마요르카 국왕은 동시에 루시용 백작령과 세르다냐 백작령, 그리고 옥시타니아(남 프랑스에서 스페인 북동부에 걸쳐 있는 지역) 내에서 하이메 1세가 획득한 몽펠리에 통치권, 오베르뉴의 Carlat 자작령, Aumelas 남작령도 보유했다.

그러나 하이메 1세가 남긴 이러한 유산이야말로 바로 그 후 인접국에 휘둘리게 되는 마요르카 왕국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중해와 대륙에 흩어진 왕국의 월경지는, 당시 종종 영토 분쟁을 일으키던 두 대국 프랑스 왕국(카페 왕조)·아라곤 왕국의 영토 사이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왕국의 취약성을 자각하고 있던 하이메 1세는, 생전에 세르다냐를 완전히 정복하여 새로운 왕국에 통합하려 했다. 또한 더 나아가 사보이아 가의 아메데오의 딸 베아트리체와 아들 자우메와의 혼담을 추진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

3. 2. 하이메 2세: 아라곤과의 갈등

아라곤의 자메스 1세 사후 왕위에 오른 하이메 2세는 종주국 아라곤의 왕인 형 페드로 3세와 대립했다. 마요르카가 아라곤의 속국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공물을 보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왕국의 체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재판소 등의 사회 제도도 갖추지 못한 마요르카는 결국 아라곤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1279년에 체결된 페르피냥 조약으로 정식으로 아라곤 왕국의 관할 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하이메 2세는 페드로 3세의 신하가 되었다. 마요르카 왕국은 아라곤 왕이 정치·경제적으로 관할하고, 재판권을 가지며, 왕국의 존속 자체가 아라곤에 좌우되는 존재가 되었다.

열세를 뒤집고 페드로 3세에 대항하기 위해 하이메 2세는 로마 교황 마르티노 4세, 프랑스 왕 필리프 3세와 연합했다. 마르티노 4세는 페드로 3세를 파문하고 아라곤을 필리프 3세에게 주겠다고 선언했다. 아라곤 십자군으로서 연합군이 페드로 3세에게 도전했지만, Formigues 섬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페드로 3세는 반격에 나서 발레아레스 제도에 침공했지만 병을 얻어 급사했다. 또한 같은 해 마르티노 4세, 필리프 3세도 잇따라 사망했다.

그러나 페드로 3세의 장남(즉, 하이메 2세의 조카)으로 아라곤 왕위를 계승한 알폰소 3세는 계속 발레아레스 제도를 공격했고, 1285년부터 1287년에 걸쳐 정복·병합에 성공했다. 이로써 마요르카 왕국은 기반이 되는 도서부 영토를 잃었다. 1295년, 아라곤 십자군 및 시칠리아 왕국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교황 보니파시오 8세, 프랑스 왕 필리프 4세, 아라곤 및 시칠리아 왕 하이메 2세 (알폰소 3세의 동생), 나폴리카를로 2세 등과 체결된 아나니 조약에 의해 발레아레스 제도는 마요르카 왕 하이메 2세에게 반환되었지만, 이전처럼 대륙 영토를 포함한 마요르카 왕국령은 아라곤의 강력한 관할 하에 놓였다. 하이메 2세는 1298년 이후 아라곤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내정에 전념했다. 도시를 재건하고, 농업을 장려하며, 경제를 발전시켰다.

3. 3. 하이메 3세: 왕국의 몰락

1324년 마요르카 국왕 산스 1세가 사망하자, 그의 조카 하우메 3세가 9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다. 그의 숙부 펠립 데 마요르카를 수장으로 한 섭정 의회가 왕국을 관리하게 되었다. 당시 아라곤 국왕 차이메 2세는 마요르카 왕위에 대한 주장을 포기하지 않아 왕위 계승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1325년 펠립은 사르데냐 침공으로 산스가 초래한 막대한 빚을 상환한 후, 아라곤 국왕이 마요르카 왕위 계승권 주장을 포기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계승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마요르카 왕국은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졌다.

하우메 3세는 아라곤 왕국과 유사한 정책을 추진해야 했다. 그는 제노바 공화국과의 전쟁 (1329년~1336년)에 참여했고, 그 결과 마요르카 왕국은 여러 경제 시장을 잃었다. 경제 위기를 해결하고자 유대인 지역 사회에 새로운 세금과 벌금을 부과했으나, 충분하지 않았다.

1341년 아라곤 국왕 페로 4세가 침략 준비를 위해 모든 관계를 단절하면서 마요르카 왕국의 문제는 더욱 심화되었다. 1343년 5월, 페로 4세는 발레아레스 제도를 침공했고, 1344년에는 루시용세르다냐 백작령을 공격했다. 하우메 3세는 프랑스 지역 영토만을 보존할 수 있었다. 1349년 이 영토들을 프랑스 국왕에게 매각하고 마요르카로 돌아왔으나, 1349년 10월 25일 류크마조르 전투에서 패배하여 전사했다. 이로써 마요르카 왕국은 아라곤 연합왕국에 합병되었다.

마요르카 왕국의 멸망은 프랑스잉글랜드 간의 백년 전쟁, 카스티야와 아라곤 연합왕국을 위성 국가로 만들려 한 제노바의 시도 등 여러 분쟁 속에서 불가피했다. 프랑스(몽펠리에를 통해)와 아라곤에 종속되어 있던 마요르카 왕국은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 늘어난 세금은 왕국 백성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1]

3. 4. 마요르카 왕가



아라곤의 자메스 1세 사후, 마요르카의 자메스 2세는 아라곤의 페드로 3세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기로 결정했다. 1279년이 되어서야 마요르카 군주는 자신의 국가가 아라곤 왕의 종속 국가임을 인정했으며, 같은 해 페르피냥 조약을 통해 아라곤 왕국과 마요르카 왕국 사이에 권력 불균형이 생겼다.

아라곤 십자군 동안, 마요르카의 자메스 2세는 교황 마르티노 4세 및 프랑스와 동맹하여 그의 형제 아라곤의 페드로 3세에 대항했다. 그 결과, 페드로의 후계자 아라곤의 알폰소 3세가 1286년 군사적으로 마요르카 왕국을 정복했다. 그러나 1295년 아냐니 조약에 따라 아라곤의 자메스 2세는 발레아레스 제도를 마요르카의 자메스 2세에게 돌려줘야 했다.

1324년 마요르카의 자메스 2세의 아들 마요르카의 산초가 죽자, 마요르카의 자메스 3세가 아홉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고, 삼촌 마요르카의 필리프가 섭정 위원회를 이끌었다. 1325년, 필리프는 산초가 사르데냐 침공으로 인한 부채를 갚은 후, 아라곤 왕으로부터 마요르카 왕위 계승권에 대한 주장을 포기하도록 했다.

자메스 3세는 제노바 공화국과의 전쟁(1329–1336)에 참여해야 했고, 그 결과 왕국은 다양한 경제 시장을 잃었다. 유대인 공동체에 세금과 벌금이 부과되었지만 재정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했다. 1341년 아라곤의 페드로 4세가 침공의 전조로 마요르카 왕국과의 관계를 단절했다. 1343년 5월, 페드로 4세는 발레아레스 제도를 침공했고, 1344년에는 루시용세르다냐 백국을 침공했다. 자메스 3세는 1349년 프랑스 왕에게 소유지를 매각하고 마요르카로 떠났지만, 같은 해 10월 25일 루크마조르 전투에서 패배하고 죽었다. 이후 마요르카 왕국은 아라곤 왕국에 합병되었다.

마요르카 왕국의 멸망은 백년 전쟁에 영향을 미쳤다. 자우메 3세의 아들 자우메 4세는 1362년까지 바르셀로나에 유폐되었다가 탈출하여 나폴리 여왕 조반나 1세와 결혼했다. 잉글랜드의 흑태자 에드워드가 카스티야 왕국 내전에서 엔리케 2세에게 패한 페드로 1세를 지원할 때 자우메 4세도 동행했으나, 종군 중 병에 걸려 엔리케 군에게 붙잡혔다. 조반나의 노력으로 풀려났지만, 1375년 소리아에서 병사했다(독살설도 있다).

자우메 4세 사후, '마요르카 왕위'는 여동생 이사벨이 계승했지만, 1406년 프랑스에서 사망하면서 마요르카 왕가는 단절되었다.

4. 역대 국왕

이름재위 기간출생-사망
자우메 1세1231년 - 1276년1208년 - 1276년
자우메 2세1276년 - 1311년1243년 - 1311년
산초 1세1311년 - 1324년1276년 - 1324년
자우메 3세1324년 - 1349년1315년 - 1349년
이하, 명목상의 마요르카 국왕
자우메 4세1349년 - 1375년1335년 - 1375년
이사벨1375년 - 1403년1337년 - 1406년


참조

[1] 서적 Barcelona Knopf Doubleday Publishing Group
[2] 문서 which was still under the rule of Muslims until 1231 when its sovereignty was surrendered to James I
[3] 서적 Barcelona Knopf Doubleday Publishing Group
[4] 문서 which was still under the rule of Muslims until 1231 when its sovereignty was surrendered to James I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